22/10/2022
생활명상 Meditation in Life
생활명상(MIL)은 일상과 명상의 연결을 지향합니다. 명상을 수련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온전한 존재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일상은 우리 삶의 자리이며, 일상을 벗어난 깨우침이나 깨달음은 가짜일 경우가 높습니다.
왜 온전한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가 타인과 세상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온전한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에 마음 속에서 반감이 일어납니다. 내가 반드시 타인과 세상에 선물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뭔데?
아직 이런 반감이 있다면, 굳이 명상을 수련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와 타인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면, 명상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상처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온전함의 한 측면이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는 모른 채로, 또는 모르는 척,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습니다.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는지, 뭘 놓친건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방식이 상처의 방식이었다면, 명상을 시작한다는건 회복과 성장의 방식으로 전환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와 타인에게 더 이상 상처내고 싶지 않다. 이런 마음이라면 명상이든 상담이든, 바른 방식으로 자기의 내면을 탐사해야 합니다.
한 때는 종교가 이러한 삶의 방식의 전환이라는 회심(Metanoia)을 제공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도화된 종교는 회심보다는 제도유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심지어 일상과 신앙을 분리시키기도 합니다. 만약 제도종교가 다시 본래의 지혜전통으로서의 종교로 개혁된다면 가능성은 있을 것입니다.
명상은 종교를 비롯한 인류의 지혜전통이 계발한 오래된 선물입니다. 명상은 사람과 삶을 위한 것입니다. 생활명상은 사람과 삶의 토대인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일상과 명상의 연결을 지향합니다.
명상의 경험을 통한 회복과 성장은 반드시 일상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누구의 말도 맹목적으로 믿을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경험을 통해 깨달아 가야 합니다. 자기를 신뢰하면 됩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바로 서면 됩니다.
저는 명상안내자입니다. 생활명상은 함께홀로있음을 강조합니다. 누구의 길도 제가 대신 가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새로 개척한 길도 없습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저도 다만 저의 필요에 따라 걷다보니 여기까지 왔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안내할 뿐입니다.
생활生活이라는 말에는 삶(life)도 들어있고, 생명(Life)도 들어있습니다. 생명이 콸콸 흘러넘치는 삶이 생활입니다. 생명력과 창발성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생활인 것입니다. 한 순간이라도 생활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일상과 명상의 연결이란 명상의 내재화를 의미합니다. 명상을 통해 경험한 깨어있음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스스로 수행자적 삶을 선택하지 않으면 지속되지 못 합니다.
생활명상의 목표는 생활수행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명상의 내재화로 일상과 명상이 통합되고 생명이 흘러넘치는 삶, 생활生活로 살아가는 사람이 생활수행자입니다.
본래 수행자는 출가자와 재가자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좀더 수행에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이었던 출가자만이 수행자의 지위를 차지하고, 재가자는 수행자가 아닌 종속적인 신자의 지위로 추락했습니다.
생활수행자는 출가수행자도 재가수행자도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인 일상에서 수행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두가 생활수행자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러한 생활수행자로 살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면의 공허함은 계속해서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임시적인 죽음을 경험하고 돌아온 임사체험자들은 그들이 받은 죽음으로부터의 질문을 공통적으로 증언합니다.
1. 무엇을 깨달았는가?
2. 충분히 사랑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