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4/2025
—김윤아, [4월은 가장 잔인한 달]_1
종을 치며 “이제 가면 언제 오나아”를 구성지게 부르는 그녀의 모습은 흡사 상여를 이끄는 여사제 같았다. 그렇게 홀연히 죽은 이들을 부르는, 또는 보내는 삶과 죽음에 경계에 선 그녀는, 2시간 30분을 꽉 채워 빛과 어둠 사이, 꿈과 현실 사이의 경계라는 작두를 타며 신명나게 자신 안의 불덩이를 토해 놓았다.
T.S.Elliot의 [황무지]에서 인용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을 콘서트의 이름으로 붙이고, 그녀는 잔인함에 대해 노래했다.
공허라는 잔인함, 죽음이라는 잔인함, 그리고 사랑이라는 잔인함.
리처드 도킨스를 인용하며 우리는 단지 ‘유전자의 숙주’일 뿐이라고, 자신은 그 말이 맞다고 믿는다고 말한 그녀는
우리가 뭔가에 매혹되는 것 역시 그저 유전자의 선택일 뿐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나 나약한 존재들, 우리는 그렇게나 공허한 존재들이라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녀는 그래서 쉽게 자신을 매혹 당하는 존재로 두는 듯 하다. 그녀가 고백하는 많은 것들에 쉽게 매혹되어 그 매혹에 흠뻑 빠지고, 그것들을 노래하면서 공허함을 채우는 것 같았다. 공허가 자신이 노래하는 원동력이라는 말이 그녀의 생각을 확인시켜주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절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음을 확신한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공감이 아니다. 동의다.
하지만 동의를 하는 순간, 그래서 오로지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잔인함이 공감되는 착각이 일었다. 그녀가 노래하는, 타인에게 가 닿을 수 없는, 잔인한 고통을 나 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와 질감이지만 그녀도 느끼는 있다는 위로라는 속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에.
마음껏 착각하면서 그녀의 고통 속에서 나의 고통을 만나 신나게 울었다. 2016년 발간된 그녀의 앨범 [타인의 고통]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듣고 나서 듣는 행위가 너무 힘들어 자주 꺼내 듣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녀의 음악이 BGM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배경으로 틀어놓았다가는 온 정신이 그녀의 음악에 포로가 되어 하던 일을 멈추어야만 하므로.
그녀는 그렇게 그 누구와도 공감할 수 없다는 자신의 깊은 고통 속으로 나를 초대하여 쉽사리 보내주지 않곤 했는데.
더군다나 콘서트 홀에 갇힌 수인의 상태로는 오죽했겠는가.
나의 오감을 사로잡는 그녀의 고통 속으로, 나의 고통을 만나러 들어가는 수 밖에.
유전자의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행할 뿐인 공허한 삶에서, 타인에게 절대 가 닿을 수 없는 가혹한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 뿐이지 않겠냐고 그녀는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말한다, 잔인한 사랑을. 사랑은 고통이다. 사랑은 언젠가 끝난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완벽한 사랑이 있다. ‘완벽한 사랑?’ 궁금증이 이는 순간, 그녀가 관객석의 불을 밝혀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완벽한 사랑은 있어요. 여러분은 완벽한 사랑을 뭐라고 생각하세요?”
“엄마의 사랑이요”, 전 엄마가 둘인데, 엄마들을 노래해야 한다면 십일을 해도 모자라요.
“조물주의 사랑이요”, 전 신을 믿지 않아서.
그녀는 앞전에 이미 말했다. 인간은 공허해서 뭔가 확실한 것을 불들려고 한다고. 그래서 누군가는 종교를 갖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는다고.
그건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완벽한 사랑이 아님에는 틀림 없었다. 궁금증이 극에 달할 때쯤, 그녀가 마이크를 잡고 다시 말했다.
“완벽한 사랑은, 가질 수 없는 사랑이에요.”
가질 수 없기 떄문에 사랑 그 자체만 남는 것, 그래서 완벽할 수 있는 것.
말장난인가 싶어 고개가 갸웃거리다가 어느새 고개가 끄덕여졌다.
매혹 중에서도 파국으로 치닿는 매혹, 그런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 완벽하게 남는다.
공연 초반에 부른 정훈희의 ‘안개꽃’이 떠올랐다. 이제는 그 노래와 뗼레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의 마지막 장면도 함께.
바닷물 속으로 사라져 완전한 미제 사건으로 남아버린 서래의 사랑. 안개 속에서, 파도 속에서 “서래씨이!”를 외치며 헤매이던 해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것은 가질 수 없는 것으로 남아버린, 그래서 영원이 되어버린 사랑에 대한 인간의 깊은 향수 때문이 아닐까.